명사수필

   

▲ 수필가 이경희慧文(문래동)

 

“엄마? 제사 음식은 왜 달라요?”

“돌아가신 분이 드시는 거니까~”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엄마의 뒤꽁무니를 조올졸 따라서 지금의 재래시장이라는 곳을 여기저기 돌며 제수 거리를 장만하려는 엄마의 의도와는 달리 기웃기웃 눈요기도 하며, 맛난 무엇을 먹는 재미에 늘 들떠서 장터를 쫓아다니던 재미에 푸욱 빠졌던 기억이 오늘도 사알짝 내 입가와 코끝을 아리게 한다. 눈물마저 핑 도는 것은 또 왜인지 모르겠다.

영등포 시장 1번 입구!

시장에 입구마다 번호가 있으니 만남을 갖는 이들에게는 편하게 느껴진다.

“차를 어찌해야 하나?”

‘완전 좋아~ 공영 주차장이 자동화 시스템에 맞게 운전자를 편하게 기다리고 있네~’

영등포시장에서 두리번거리며 여유껏 여기저기를 다녀 보고 싶을 땐 살짝 옆으로 조금 눈길을 돌리면 주차장이 예쁜 손짓을 하고 있고, 길 건너 편 야간 포장마차가 옛 정취를 풍기며 푸르른 시절로 마음을 흔드는 그 곳 뒤를 조금만 이동하면 층층이 대형 공영 주차장이 넓은 장소로 가슴을 열어 놓고 있다.(Tmap을 이용하면 아리를 부르는 재미도 흥겹고 재미난다)

‘차는 잠시 Break Time을 주고~’

영등포아크로타워스퀘어가 한강을 바라본다는 주워들은 정보를 뒤로 하고 씩씩하게 시장 안으로 발길을 돌리면 나의 좌우에는 그 옛날 철물점들이 줄지어 있다.

“어머나~”

집안 구석을 살펴 주는 자잘한 조그마한 부속품들과 아파트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관리 부품 그리고 집안의 열 손실을 막아 주는 뽁뽁이 에어캡까지 눈에 띄는 물건들 모두가 우리네 삶 가까이에서 필요한 것들의 모습이여서 괜시리 정겹고 나의 것 같은 욕심쟁이 마음을 갖게 한다.

아치형 영등포시장 남문, 북문의 간판이 나처럼 길치인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 주는 곳으로 쑤욱 들어간다.

“우와~”

식탁 위에서 말끔하게 얼굴을 내미는 그 애들이 모두 모였다. 쭉쭉빵빵 무, 날씬이 당근, 색조 화장을 한 보라 양파, 예쁘게 파마를 하고 얌전히 앉아 있는 배추 그리고 깔끔떠는 마늘 등등 어쩌면 시골 밭에서 KTX를 타고 바로 왔는지 싱싱함을 그대로 안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을 그대로 보여주는 흙의 善함을 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울컥거려 한참을 그냥 서 있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배추도 무도 자꾸만 자꾸만 할머니의 모습으로 얼비치니 발길을 옮길 수 없어 가만히 무를 바라보다 저녁 반찬으로 무생채를 해 보기로 한다.(사실 나는 세끼 밥을 거의 다 사 먹는데 그래서인지 반찬을 한다는 것이 몹시 겁이 난다.)

‘그래! 해 보자!’

무 생채 비빔밥을 벌써 맛있게 먹는 모습을 하고 쭈우욱 시장으로 걸어간다.

몇 걸음 나아가지도 않았는데 돼지불백 집 종이 간판이 내 코를 자극한다.

‘맙소사! 엄청 손님이 많네!’

문 앞에서 구어지는 돼지 불고기의 냄새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겨우 한자리 비어 있는 둥근 테이블.

일단 앉았다. 숙련된 아주머니의 테이블 셋팅엔 상추, 마늘, 양념장, 콩나물 무침, 시레기된장국, 김치가 손끝에서 미끄러지듯 안착한다. 잠시 후 돼지 불고기가 맛나게 구워진 상태로 왔다.

‘맛있어! 다음에 꼬옥 또 와야지!’

좁은 공간이지만 둥근 테이블 여기저기에선 막걸리와 소주에 정겨운 대화가 이곳이 아늑한 영등포 시장임을 알게 해준다.

(돌아서 나오는 길이 줄서서 기다리는 분들의 설레는 마음으로 분홍빛이다.)

다시 시장 안을 걷는다. 커다란 소쿠리와 내 키만 한 곰솥, 반짝거리는 그릇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몇 걸음 옮기니 닭들이 알몸으로 누워 있다. 싱싱한 고등어, 춤추는 오징어, 온몸을 웅크린 문어, 탱탱한 몸을 뽐내는 삼치, 서울 제사상을 빛내는 조기(커다랗고 약간은 시꺼먼 빛깔의 부세는 이름도 보인다),살짝 말린 코다리(제수용 동태포는 늘 줄지어 눕혀 있다.)그리고 이름 모를 생선들이 푸른 등을 뽐내며 조개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건너편 가게의 참기름, 들기름의 고소한 냄새는 자꾸만 사람을 잡아끈다. 이제 나는 눈을 감고 싶다. 먹거리 ㅡ 한과, 식혜, 수정과, 고구마튀김, 과자 등등ㅡ가게들이 쭈욱 펼쳐져 있으니...... 분명히 밥은 먹었는데 그들의 유혹이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굳게 마음을 먹자! 오늘은 여기를 그냥 통과한다! 아자! 참자!’

족발, 튀김, 잡채, 전들 그리고 온갖 반찬들을 앞에 놓고 푸근한 얼굴로 막걸리를 드시고 계신 어르신들 그리고 그 옆에서 재밌고 귀여운 표정으로 대화하는 젊은 남녀 善人들의 웃음소리가 아직은 겨울인데 봄인 듯 계절을 잊게 한다. 무사히 유혹을 견뎌 내고 아쉬운 걸음을 걷는데 신상인 옷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집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코끼리 바지부터 부담 없는 가격으로 구매 가능한 외출복들이 동남아를 여행하며 달러를 소비하면서까지 구입하는 소비 지향적 구매가 아닌 내 나라 우리 카운티 ㅡ영등포시장에서의 알뜰한 소비자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MADE IN KOREA!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그곳의 정취를 눈 속에 넣고, 양손에 정겨움까지 더해진 요리할 재료까지 꽉 잡고, 들어갔을 때가 아닌 다른 입구로 나온다! 바로 지하철역이 앞에 있다.

역세권! 브라보, 영등포시장!

 

 

 

 

저작권자 © 영등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