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 시인(육필문학관장)

   

▲ 노희정 시인이 오슬로 프로그네르 공원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물을 손바닥에 담아 마셔 보았다. 짜다. 큰 계곡 같고 호수 같은데 바닷물이다, 피오로드다.

한 점 회를 먹는다. 회 한 접시가 게눈 감추 듯 입 속으로 녹아든다. 연어 회다. 연어의 고향 노르웨이 항구다.

폭포가 있는 외진 호텔에 투숙을 했다. 벽에는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그림 한 점이 무겁게 걸려 있다. 내심 호텔방엔 잘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역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짐을 푸는데 옆방에서 아악! 비명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지인은 그림 한 점을 들고 나와 복도 벽에 뒤집어 놓는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무서워서 못 보겠단다. 그림을 보니 무서울 만 했다.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귀신 그림이다. 물론 뭉크의 작품이다. 이렇듯 호텔방엔 어울리진 않지만 세계적인 화가, 절규를 그린 뭉크의 그림이 인기다. 뭉크의 나라 노르웨이에 왔다.

오슬로는 노르웨이의 수도다. 이곳에서는 매년 노벨 평화상 수상 시상식이 열린다. 2000년12월10일 김대중 대통령도 여기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르웨이는 어디를 가도 주의 환경이 깨끗하고 단아했다.

조각을 좋아하는 나는 이번 노르웨이 여행에서 기대를 한 곳이 프로그네르 공원이다. 이곳은 노르웨이 대표적인 조각가인 구스타프 비겔란 (1869∼1943)이 만든 공원이다. 청동이나 대리석등으로 만든 200여 개의 조각상들이 있는 공원이다. 비겔란은 오슬로시의 자금을 얻어 1915년부터 오슬로 프로그네르 공원에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조각 공원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공원입구부터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보며 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각 작품들은 인간의 한 생인 요람에서 무덤까지 표현한 작품들이다. 공원 중앙에 우뚝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은 270톤에 달하는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 하나로 조각해 놓은 17m 높이의 작품 모놀리트(Monolith)다. 이 작품은 121개의 조각과 36개의 군상으로 탄생·유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죽음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들은 실제 사람크기로 만들어져 있다. 이 조각은 작품 같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서 엉키어 있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모놀리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으로 만든 조각품이라고 한다.

비겔란의 작품 하나하나는 가족이나 삶의 애환들을 담아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잉그리 보이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서너 살 먹은 남자아이의 표정이 몹시 화가 나 있다. 왜 화가 났을까? 관광객들은 화난 아이의 고추를 만지며 화를 풀라고 주문 한다. 고추를 하도 많이 만져서인지 금빛이 난다. 금새라도 노란 소변이 내 얼굴에 쏟아질 것 같다. 나도 아이의 고추를 잡고 아이의 화를 달래 보지만 아이는 여전히 화를 내고 있다. 이 아이의 화는 100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화는 풀리지 않으리라.

비겔란의 작품 중에서 나무 작품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느낌을 준다. 나무 한그루에 매달려 곡예사들이 실제 공연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슬아슬한 장면이 가장 인상 깊다. 나무 그늘 아래서 사색을 하는 노인, 혼자 노는 아이, 젊은 연인의 달콤한 키스 장면 등 리얼한 표정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비겔란만이 발휘할 수 있는 초인적인 창작력 상상력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4세 때 목세공가의 제자로 시작한 조각가 비겔란은 오귀스트 로댕의 영향을 받았지만 바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실주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프로그네르의 공원의 완성은 보지 못하고 타계했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비겔란이 가난하게 살았기에 군상들의 애환을 리얼하게 묘사 하지 않았나 싶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을 통해서 인생의 희노애락(喜努哀樂)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인생을 반추 해 보았다.

바로 작품을 만들 기세로 오른 손에는 쇠망치를 왼 손에는 정(조각도구)을 들고 있는 구스타프 비겔란의 동상이 프로그네르의 공원입구에 서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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