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 시인(육필문학관장)

   

▲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그대 만나러 바르셀로나에 왔어요. 당신 그리워 긴 시간 설레며 왔어요. 내가 찾아 온 이곳은 예수님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일생이 그려져 있네요. 수십 년 동안 당신의 영혼으로 설계했다지요. 고개를 기린처럼 들고 까치발을 하고 쳐다보아도 당신이 빚은 건축물은 예수님의 일생을 3D프린터로 빚어 놓은 것 같았어요. 함께 동행 했던 친구는 성당을 쳐다보다 소매치기까지 당했어요. 그래도 와서 보기를 잘했다고 소매치기 당한 돈과 핸드폰이 아깝지 않다고 하네요.

나 그대의 영혼을 느끼러 왔어요. 왜냐고요? 제가 10년 동안 운영하던 육필문학관을 리모델링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때 당신이 만든 작품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무조건 온 거예요. 당신은 수천 키로를 단숨에 날아온 나에게 눈부신 건축철학을 느끼게 해 주었어요. 여기 와서 당신의 일생을 듣고 눈물이 났어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젊어서 가족들을 잃고 외로운 삶을 산 당신에겐 건축만이 가족이었고 애인이었고 인생의 전부였더군요. 밤새 당신 생각하며 울었답니다. 그냥 슬펐어요. 당신의 내면에 품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을 보며 뭔지 모를 슬픔이 밀려 왔어요.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 성당의 내부에 들어가서 한동안 넋이 나갔었어요.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한편의 서정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기하학이 강조된 건축이 아니라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포도 등 자연의 사물들이 형이상학적인 모습으로 살아 있었어요. 그런 자연들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색과 빛이 조화를 이루고 상생 할 수 있도록 설계를 했더군요. 당신의 관찰력은 곤충학자 파브르처럼 예민했고 우리나라 김소월 시인의 시처럼 서정적 감성을 건축화한 듯 보였어요.

당신의 이름은‘안토니 플라시드 기옘 가우디 이 코르넷(Antoni Plàcid Guillem Gaudí i Cornet)’이죠. 1852년 6월25일에 태어나 1926년 6월10일에 생을 마감했지요. 당신의 주검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도했다지요. 그것은 당신의 죽음이 너무 허무했기 때문이지요. 당대의 천재 건축가를 치고도 노숙자인줄 알고 무시한 전차 기사나 택시 운전수의 매정한 행동이 당신의 죽음을 단축했지요. 당신은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라며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생을 마감했다 들었습니다.

당신이 만들어 놓은 신세계를 돌아보며 철이 들었다가, 순수한 동심이 되었다가, 현실로 돌아 왔다가 비현실 세계로 갔다가, 5차원 세계로 왔다 갔다 했습니다. 몽환적인 꿈을 꾸듯 황홀 했습니다. 당신의 건축학 이론이 "저기 보이는 나무가 자기의 제일 좋은 건축 교본"이라고 일축 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한 것은 자연이었습니다. 자연의 순수한 영혼이 세기에 영원히 남을 건축물을 만든 것입니다. 당신의 살과 뼈와 혼이 만든 이곳 바르셀로나, 축복받은 땅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40년 동안 몰두 했던 가우디 그대의 상상력, 집중력, 정신력은 무한한 것이었습니다. 불가사의한 우주의 힘까지 함께하며 신을 믿는 정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오늘 당신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신비한 정신을 느꼈습니다. 자연친화적인 당신의 건축학을 육필문학관에 심어 보겠습니다. 동양에서 온 한 여인이 기도합니다.

가우디 당신이 태어난 스페인 이 땅에 행운이 영원하기를 그리고 편안히 영면에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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