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곁으로

[영등포투데이] 2024 인권 곁으로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 인권생태계팀에서는 매월 1회 보편적 권리로서 의사소통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한 주제와 소제로 풀어보고자 한다. 진정한 의사소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 편집자주

글 /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 인권생태계팀 2024 ‘인권 곁으로’

▲김대연 작가 작품
▲김대연 작가 작품

발문
‘서는 데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웹툰 송곳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자기만의 소통법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발문
‘잘 되는 소통’에 있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소통에는 각자의 방식이 있고 소통하는 방법도 다르다. 누군가는 말로 소통하고 누군가는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소통한다


통하였느냐(通)
수년 전 인도에서 두 달 정도 머무르며 인도 청년들과 여행도 다니고 일상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인도에서는 영어가 일상언어로 쓰이기도 하니 우리의 소통 언어는 영어였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일상생활에 제약도 생기고 인도 친구들과 더 깊게 사귀고 싶어도 언어 장벽이 높아 아쉬웠다. ‘영어를 잘하면 좋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 높디높은 언어 장벽을 부숴준 인도 청년이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말 없는 사람이었던 나에게 유독 관심과 사랑을 줬던 산지브(sanjeev). 내가 ‘산집’이라고 불렀던 인도 청년이다. 우리 둘의 소통 방법은 특이했다. 나는 내 언어인 한국어로, 산집은 자신의 언어인 영어를 썼다. 그런데 산집과 나 사이에는 그 어떤 장벽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온전한 소통의 기억이다. 나는 산집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소통(疏通)과 고통(苦痛) 사이에 선 사람들
소통도 능력인 세상이다.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의사소통법, 의사소통 능력 개발 강의, 책, 영상이 인기다. 외국어 하나쯤은 잘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문서 이해 능력도 무척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소통을 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소통이 잘돼야 조직도, 사회도, 인간관계도 좋아진다고 말하는데 과연 소통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강조할까? 
소통(疏通), 단어 그대로 풀이해 보자. 트일 소(疏)에 통할 통(通), 바로 막힌 것 없이 통하는 것을 말한다. 소통이 잘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 조직과 사람 사이, 혹은 조직과 조직 사이에 그 어떤 장벽도 없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 바로 유토피아(utopia) 아닌가. 소통을 강조할 만하다. 
그런데 ‘잘 되는 소통’에 있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소통에는 각자의 방식이 있고 소통하는 방법도 다르다. 누군가는 말로 소통하고 누군가는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소통한다. 나는 한국어를 쓰고 산집은 영어를 썼던 것처럼. 이 세상 모두는 각자의 언어가 있다. 말로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몸짓이나 눈빛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수어(손과 손가락의 모양, 손바닥의 방향, 손의 위치, 손의 움직임과 표정 등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와 필담(글을 써가며 의견이나 생각을 주고받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블랙홀 연구와 장애인으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말하지 못했다.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보완대체의사소통 (AAC) 도구를 사용해 세상에 자기 생각을 보여줄 수 있었다. 안면근육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컴퓨터 화면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생각을 글로 보여주는 시스템을 활용한 것이다. 호킹 박사는 ‘소통’했다. 그는 세상과 소통 방법을 찾았다. 또 세상이 호킹 박사의 생각을 보고 싶어 했고 그의 소통 방식과 시간의 차이를 충분히 기다려 줬다. 
인도에서의 나처럼 외국인이거나 다른 표현 방식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수어를 써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데 알아듣는 사람이 없고, 눈짓과 몸짓으로 말하고 있는데 보는 사람이 없다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 
의사소통은 인간이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사회 참여를 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그런데 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면, 아니 내가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어떠할까? 나의 감정과 의견을 나의 능력치에 따라 없다고 치부해 버린다면 어떠할까? 그에게 있어 세상은 진짜 불편하고 불안한 세상일 것이며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통과 고통, 소리가 비슷하나 뜻이 다르다. 고통(苦痛)은, 쓰고 괴로울 고(苦)와 아프고 슬픈 통(痛) 자를 쓴다. 너무 괴롭고 아파 슬프기까지 한 상태가 바로 고통의 상태이다. 세상은 소통이 가능한 이에게는 막힌 것 없이 사방이 손 뻗을 곳이 되고, 소통에 장벽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괴롭고 슬픈 상태에서 누구에게 손을 뻗고 누구에게 자신이 자신으로서 살아있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 
 
서는 데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다시, 의사소통 이야기로 돌아가자. 의사소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 인간은 서로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관계 맺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태생이 그러하다.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그런 인간이 의사소통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다른 존재와 관계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부터다. 그래서 의사소통은 능력이 아니라 권리이다. 당연히 누리고 그러해야 할 권리!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기본적인 권리로서 의사소통을 말하고 진정한 의사소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소통할 수 없어 고통스러운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위해 우리가 서 있는 곳을 바꿔보는 것. ‘서는 데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웹툰 송곳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자기만의 소통법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같이 생각해 볼 때다. 입장을 정해야 한다.
인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인 요즘, 유독 산집 생각이 난다. 산집의 향수 냄새 때문일까? 아니면 아침마다 가져다주던 그린 애플 때문일까? 아니면 그는 영어로, 나는 한국말로 대화하던 그리운 진짜 소통의 기억 때문일까? 아마도 산집이 내게 보여준 관심과 배려, 존중 때문일 것이다. 맞다. 의사소통의 기본은 의사소통의 기본은 바로 상대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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