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청년기자 청년을 만나다
아로마 테라피 ‘EALLUM’ 공방 박기련 작가

[영등포투데이] 들어서자마자 확 풍겨오는 이색적인 향기들, 맛있어 보이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귀여운 비누와 소품들, 마치 마법약을 만드는 판타지 세계에 온 듯한 갖가지 허브와 향의 재료들, ‘일럼 향기치유공간’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향과 관련한 제품들을 판매하는 상점 정도로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지만, 막상 작업실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재료들의 나열과 그 기능에 대한 전문성을 알게 되면 가히 ‘장인’이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문래창작촌 한 켠에서 ‘아로마 테라피’ 관련 강의와 다양한 제품을 판매, 전시하는 박기련 작가를 만나보았다.

주홍비 청년기자

만족스러운 회사원에서 스스로 독립하게 되기까지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죠.”
화장품 회사에 다니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박 작가는 직장 여건이 바뀌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사내 교육 관련 부서에 있었는데, 해외 지사로 발령받아 트레이너를 양성하고 교육자료를 제작하는 일을 했습니다. 회사가 원하는 것과 현장에서 원하는 것의 차이로 인한 괴리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선 퇴사를 했습니다.” 심각한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진 경험을 한 후에 하던 일과 경험을 살려 ‘아로마 테라피’에 천착하게 됐다고 한다.
‘아로마 테라피’는 꽃이나 나무 등 식물에서 유래하는 방향 성분을 이용하고, 심신의 건강이나 미용을 증진하는 기술 혹은 행위를 이른다. 향기치유공간 ‘일럼’의 제품, 혹은 작품들의 뒤편에 있는 작업실에는 재밌게도 한약방의 약재 서랍이 한 벽면을 채우고 있다.
“‘아로마’, ‘허브’라는 용어를 쓰다 보니 서양 문화라고 생각도 많이 하시지만, 사실 향을 이용하는 약초, 약재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거나 같은 경우가 많아요.”
동서양의 매혹적인 문화가 섞여 있는 듯한 조화로운 이 공간 ‘일럼’은 박 작가가 ‘문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묵묵히 만들어낸 소중한 세계이다.

묵묵하게 홀로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이 함께하는 ‘문래’라는 동네

“사실 ‘문래’는 돈을 벌기 위해 있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2017년부터 시작해서 8년 차 문래동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박 작가.
거주하는 곳이 영등포구는 아니지만, 문래에 대한 애정 만큼은 그 어떤 이들보다 ‘진심’이 느껴졌다.
“저희 공간의 이름인 ‘일럼(EALLUM)’도 ‘문래(Mullae)’ 영어철자를 반대로 쓴 것이에요. 문래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곧 저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2017년 처음 시작할 때의 문래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조용한 곳이었다고 한다. 작품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출사자들의 성지,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산책하는 모습, 다양한 공방을 운영하는 선생님들 등 돈을 번다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이 우선인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며 이들과 만들어낸 ‘문래’라는 동네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는 자부심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문래에서 만난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분을 꼽아달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한 명, 한 명 다 잊기가 어려워요.”라고 대답하는 박 작가는 문래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는 장인적 특성이 있다고 한다.
예술가도, 작가도, 공방도,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들까지도. 자신만의 기준과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문래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

“예술이 무엇일까요? 문화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요?”
대표, 작가, 사장, 선생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박 작가는 꾸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우리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제조업으로 대표되는 소공인에도, 예술촌의 예술인에도 속하지 않아요. 물론 그분들의 영역을 저 역시 존중하고, 억지고 끼어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배척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순수미술과 산업미술의 경계는? 전시 경험의 유무? 제도적으로 예술인 명부에 등록이 돼야 하는 것일까요?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요? 결국 공방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박 작가의 질문은 ‘문화도시’ 영등포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 영등포가 ‘문화도시’ 타이틀을 가지고 지키려고 하는 것, 지켜야만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공방을 하는 사람들은 혼자 하는 작업을 선호하는 특성이 있다 보니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애매한 입장에서 기회를 얻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제가 공방을 운영하면서 이렇게 공방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실제 예술 작가들께서도 문래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요. 공방 역시 문래를 구성하는 큰 교집합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 작가는 일방적인 지원이나 지원금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필요한 것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것.
“영등포가 가지고 있는 ‘문화도시’라는 타이틀에 있어서 문래창작촌이 대표성을 가진다고 한다면, 이곳에서 활동하는 창작가들이 지속성, 연속성 없이 개별적으로 단발적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도시 영등포에서 주민들이 진정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창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허브가 필요하다는 것.

문래동 젠트리피케이션, 그 현장에서

“제가 2017년에 들어올 당시에 이미 그 전 세입자의 두 배의 월세를 내고 들어왔어요. 계약하러 오는 중에 더 올려달라는 경험도 해봤습니다. 지금은 가속화됐을 뿐이죠. 현재도 시시각각 갑자기 밖으로 내몰리는 창작가들을 꽤 봤습니다.”
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묻자 실감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어떤 철공소 사장은 술을 마시고 저희가 원인이라며 욕을 하신 적도 있어요. 스스로가 그런 흐름을 만들고 있는 주체라는 자성도 합니다.” 따라서 마냥 지켜주고 보장해줘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주었다.
“예를 들어 익선동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은 사례라고 하지만 사실 살고 계시던 분들은 떠났고 완전 상업화가 됐거든요. 자리 잡은 청년들은 다른 지역에서 또 청년 상권을 활성화하고요. 이게 정말 극복한 것일까요? 행정에서 막을 수 있는 부분도, 막아야 하는 부분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켜주는 것이 아닌, 막아달라는 것이 아닌, 창작자들에게 ‘기회’를 달라고 이야기한다.
“저희를 보여줄 수 있는 마켓/전시 등의 활동의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기여하고 싶기도 해요. 원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오픈 세미나 등을 열어서 새로운 참여자와 주민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영등포라는 이웃에게

“처음 공방을 열었을 때는 주변 거주자분들이 많이 찾아주셨어요. 문래동 길이 좁고 불편한데도,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시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지금은 문래를 찾는 사람들이 예술과 문화보다는 유흥객으로 많이 변한 느낌이라 안타깝습니다. 거리에 자욱한 담배 연기와 침을 뱉고, 욕을 하고, 저라도 아이들과 오기 어려울 것 같아요. 다시 서로 존중해주는 문화가 생기고 그 문래동만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일요일 저녁 강아지와 산책하던 주민분들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 작가는 영등포가 참 재미있는 도시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가 함께 존재하잖아요. 금융의 중심 여의도, 재개발단지, 한강, 안양천, 부촌과 빈촌이 밀접하게 존재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죠.” 특히 자신의 정체성을 ‘문래’로 가지고 있는 만큼, 문래를 사랑하며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문래가 주는 여러 가지 색깔이 주는 영감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전한다.
“저는 거주자는 아니고 ‘생활인’이죠. 하지만 그렇기에 거주자분들과 지역사회에 더욱 애정을 가지고 공헌해 보고 싶어요.”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오롯이 ‘거주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미 문래의 무수한 창작자들이, 예술가들이 영등포를 ‘문화도시’로 만들어 주었다. 우정과 환대의 이웃, 다채로운 문화생산도시 영등포에서 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문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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