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콩트 선물

[영등포투데이] 

이은집 작가
이은집 작가

“아유! 고개 중에 끝없는 고개는 인생고개라더니, 올해두 벌써 12월이 다 가서 2024년 새해가 코 앞이니 참말루 인생무상이네유!”
2023년 새해를 맞으면서 올해는 ‘흑토끼의 해’라고 떠든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두 장의 달력을 떼어내고 2024년 새해 달력을 걸게 되었으니, 정말로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단 말이 실감나는 요즘의 세밑인 것이다. 바로 이런 송구영신의 길목에서 마누라가 아침부터 새해 달력을 들고 주방에서 거실로 왔다갔다하기를 수 차례나 해대니, 내가 한마디 건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앗다! 여보! 설운도 가수의 노래중에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갈까요?”처럼 왜 달력을 들구 집안을 헤매는 거요?“
그러자 마누라가 나를 흘겨보며 심통맞은 목소리로 대꾸를 해왔는데...!
“아이구! 이제 새해 달력을 걸려니깐 주방이 좋을지? 거실이 좋을지? 헷갈려서 그래유! 아니! 가는 세월에 또다시 새해 달력을 걸자니껜 심란하다구나 헐까유?”
아참! 그리고 보니 지난 해는 토끼처럼 빨리도 달려서 훌쩍 한해를 보냈고, 새해 용띠 해를 맞게 되고 보니 아쉬움이 크다고나 할까? 그래서 마누라에게 물었다.
“여보! 해마다 상징 동물이 나오는디, 당신은 무슨 띠가 제일 맘에 드는 것 같소?”
“글쎄유! 소 범 토끼 뱀 원숭이 닭 개 돼지 양 말 쥐 용 등 다 특징이 있지만 그래두 가장 신비의 상징 동물은 용이니 용띠가 좋은 것 같네유!”
“허긴 용은 특히 중국에서 신비의 상징으루 치는디, 숫용은 7.80 미터나 되구, 암용은 4.50미터 쯤 되는디 뿔이 있고 네 발톱의 위엄이 넘치는 영물이지!”
“야아! 그런께 용의 해인 2024년은 정말 세상이 좋아지는 해가 됐으면 좋겠네유!”
“아암! 특히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의 해인께 훌륭한 선량(選良)을! 아니! 선룡(選龍)을 뽑았으면 좋겠는디 말이여!”
나의 이런 해몽같은 대답에 마누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받은 대꾸가 또한 걸작이었던 것이다.
“누가 아니래유! 그런께 여당 야당이 서루 국회의원 되겠다구 싸우는디 제발 출마자들은 신사적으루 겨루었으면 해유! 왜냐하면 용은 둘이 만나 싸우면 서루 함께 죽으니께유!”.
“에잉? 그건 또 무슨 소리랴? 용은 둘이 싸우면 죽는다니...?”
“아유! 이런 말이 있잖유? <용용 죽겠지?> 그렁께 용끼린 싸우면 안된다구유!”
마누라의 이런 엉뚱한 얘기를 들으면서 나에겐 어려서 내 고향 청양에 살 때 용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아이고! 또 모기에 뜯기구 빈대에 물려 잠 못 자는 한여름이 돌아왔구먼 그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삼복염천을 워찌 지낸대유?”
“누가 아니래유? 여름엔 더위에 늙구, 겨울엔 추위에 늙는게 우리 같은 촌사람들 아닌감유?“
“암유! 그래서 농촌살이가 힘든 거쥬! 얘들아! 그런디 아무리 더워두 저어기 벼락바위 아래 있는 용툼벙엔 미역 감으러 가선 안 된다!”
그때 동네 어른들은 집집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주의와 엄포를 놓았는데, 용툼벙은 동네 들판과 바위산이 맞닿은 곳에 위치한 큰 냇물의 음습한 툽벙으로 시퍼런 물길이 휘감아 도는데, 이상한 물소리가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것이다.
“얘들아! 용툼벙에서 미역을 감으면 암만 더워두 싹 가신당께! 그렁께 우리 글루 미역감으러 가자!”
하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이를 무서워 하지 않고, 어른들 몰래 떼지어 용툼벙으로 미역을 감으러 갔던 것이다.
“와아! 여기 용툼벙에 메기가 돌아댕긴다! 어어? 장어도 있구 두 뼘은 되는 붕어두 헤엄쳐 댕긴다!”
아이들의 호들갑스런 외침이 아니라도 용툼벙에는 유난히 큰 물고기들이 많았다.
“이 물고기들을 용이 잡아먹는디야! 그렁께 함부로 물고길 잡으려구 하지마!”
그런데 한여름 장마철에 천둥번개와 왕소나기가 쏟아질 때 용툼벙 위로 자욱한 안개가 낀 것은 용이 승천하려고 그렇다고 했다. 내가 이런 용툼벙의 추억에 잠겼을 때 마누라가 큰소리로 물어왔다.
“여보! 근디 22대 총선 때엔 어떤 후보를 국회의원 감으루 찍쥬?”
“으음! 에, 국민 위해 소처럼 일 잘하구 나라 위해 말처럼 열심히 뛸 후보가 어때? 아참!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에 공부 열심히 해서 개천에서 용났듯이, 국민을 잘 살게 해 줄 용 같은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으면 싶구먼! 하하!”

이은집
문래동 거주 작가. 1971년 창작집 <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등단. 저서 <눈물 한방울> <스타 탄생> <통일절> 등 35권 출간. <충청문학상> <한국문학신문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세계문학상> 16개 문학상 수상. 2014 세종우수도서, 2016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창작지원금 선정. 한국문인협회 수석 부이사장.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종합문예지 <시와창작> 주간. 그외 방송작가와 작사가로도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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