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영등포

양평동공장지대(해태제과, 1960년대)
양평동공장지대(해태제과, 1960년대)

[영등포투데이] 한강 수운이 최고의 교통수단일 때 양화진은 송파진, 한강진과 함께 한강의 3대 나루터였다. 양평동의 동명은 이렇게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사람들이 한강을 건너다니던 양화진(楊花津, 버드나무 꽂이 피는 나루라는 뜻) 근처 들판에 형성된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 즉 양화진의 ‘양(楊)’ 자와 들 ‘평(坪)’ 자를 따서 양평동(楊坪洞)이 된 것이다. 현재는 양평대교 등의 수많은 한강대교가 과거의 한강 나루를 대신하고 있다.
이 양평동에는 토착민 사이에 불리고 있는 옛 지명들이 있다. 선유도 동쪽 옛 양화진나루 근처의 톱밥같이 생긴 모래밭을 ‘나루께모래톱’, 양평 2동 사무소 근처 벌판에 있던 마을을 ‘벌말’이라 불렀다. 그리고 처음에 4집만 있었던 곳의 마을을 ‘네집매’, 양남시장 근처에 주택 이백채가 들어선 마을을 ‘이백채’라 했다. 한편 당산동에 접해 있는 한강 지류인 안양천의 제방을 ‘오목내뚝’, 그리고 안양천을 건너다니던 나루를 ‘작은 나루’라고 불렀다.

선유도의 백사장(1940년대)
선유도의 백사장(1940년대)

당시 양평동 일대에 살던 사람들은 밭농사나 고기잡이에 종사했으며, 강변에는 작은 집과 나루터,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정자 등이 이어져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근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양평동의 농지, 모래밭이 공장으로 바뀌는 공업화가 시작되었다. 한국모방 등 섬유공장, 제일제당·롯데제과 해태제과 등의 식료품 및 음료공장이 그것이다. 현재는 인구증가와 함께 과거의 공장지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등 주택 및 상업·업무지역으로 변모했다.
양평동에서는 지역특화 문화사업으로 매년 정월대보름을 맞아 오목교 아래의 안양천 둔치에서 정월대보름 맞이 민속놀이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주민화합을 위한 문화공연 및 달집태우기, 대동놀이, 쥐불놀이 등 민속놀이가 진행된다.

자료제공 / 영등포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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