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콩트

[영등포투데이] 

이은집 작가
이은집 작가

“여보! 심심헌디 당신헌테 수수께끼나 하나 낼까유? 명절중에 빠르게 오는 명절은 뭐구 천천히 오는 명절은 뭔지 아슈?”

그토록 지난 여름엔 무더위에 장마에 태풍에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요즘 날씨는 날로 푸르른 하늘에 선선한 바람의 상쾌한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런 아침에 설거지를 마친 마누라가 거실 벽의 달력을 바라보면 물어오는 말이었다.

“엥? 무슨 명절이 빠르게 오는 명절이 있구, 천천히 오는 명절이 있다는겨?” 

어이없어 의아한 얼굴로 마누라를 바라보는 나에게 이번엔 더욱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했던 것이다.

“그럼 사람을 늙게 만드는 명절은 뭐구, 젊게 만드는 명절은 뭔지 아슈?”

이에 점점 의아해져서 나는 마누라에게 이렇게 대꾸했던 것이다.

“아이고! 팔순 할매가 되더니 치매기가 생겼나? 그런 헛소리 말구 어서 무슨 명절인지 대답이나 해보라구!”

그러자 마누라가 그제서야 수수께끼의 해답을 알려줬는데...!

“아유! 빠르게 오는 명절은 추썩추썩 빠르게 낼 모래로 닥쳐 온 추석이구유! 설은 슬슬 오니껜 천천히 오는 명절이쥬! 글구 설은 나이를 먹으니 늙게 허는 명절이구, 추석은 사람들을 보름달처럼 기쁘게 헌께 젊어지는 명절이쥬!””

아하! 그리고 보니 올해 추석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아래에서 흑토끼가 떡방아를 찧을 테니 진짜로 추석다운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유! 여보! 우리집 10남매 대가족이 10여년 전만 해두 몽땅 우리집에 모여 명절을 쇨 때엔 40여명의 대식구가 모여 북적였는디, 이젠 각자 집에서 따루 명절을 쇠다보니 어쩌다 경조사 때나 겨우 만나지 뭐유?”

“그래서 이젠 조카들은 얼굴두 잊을 지경이구 형제들두 만난 지 몇년인구!”

“야! 고향에두 조카 하나 달랑 살구 보니 추석이 와두 고향 가 본 지가 언제인지!”

“누가 아니래유! 그러니 여보! 우리 올해 추석은 두 번을 쇠면 워떻컸슈?”

“에잉? 추석을 두 번이나 쇠다니?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여?”

마누라의 이런 제의에 나는 기가 차서 멍하니 바라보았는데, 그 대꾸가 또한 어처구니 없었다.

“여보! 올 추석은 오는 28일부터 시작되는디, 추석 3일 연휴에 일요일이 이어지구 다음다음의 3일은 개천절 휴일에, 2일은 나라에서 경기두 진작할 겸 특별히 휴일로 지정해서 추석 연휴가 장장 6일이 되잖유?”

“아암 그렇지! 그래서 긴긴 연휴 추석이니 추석을 두 번 쇠자는 건감?” 

“야아! 진짜 추석날엔 우리 식구끼리 추석을 쇠구유! 개천절까지 뒷 3일 연휴엔 모처럼 형제들과 함께 고향을 찾아가 부모님 산소두 성묘하구 고향에서 다시 추석을 쇠면 워떻컸냔 말유? 내 말은...?”

“으흠!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네! 그렁께 지금 사는 집에서 추석과 고향에 가서 쇠는 추석! 아따 모두들 그리 추석을 쇠면 증말루 나라 경제 진작에두 도움이 되겠는걸! 허허허!”

나는 이렇게 마누라에게 대꾸하며 웃음을 터뜨렸는데 순간, 나에게는 어려서 내 고향 청양에 살 때 즐겁던 추석의 추억이 떠올랐다.

“얘! 인집아! 재뜰논의 노인벼가 잘 익었지? 추석에 송편두 만들구 차롓상에 메를 올리게 어이 베어다가 타작하거라!”

아버지가 채근하시는 말씀에 둘째형은 지게를 지고 나가 일찍 익는 노인벼를 베어왔다. 그때 어머니께선 광목에 검정물을 들여 우리 형제들에게 추석빔을 해주셨는데, 키가 큰 형이나 동생에게만 새 추석빔을 해주고, 나처럼 키가 안 자라면 그냥 입던 옷을 빨아주어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랐다. 

“은집아! 넌 먹는게 다 워디루 가구 그리 키가 안 크냐?”    

이때 어머니가 이런 꾸중을 하시면 나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뒷곁 대나무밭에 가서 남몰래 울기도 했던 것이다.

“자아! 송편을 찌게 뒷산에 가서 솔잎을 따오너라!” 

그때 여자들이 대청에 둘러 앉아 송편을 빚고 이런 심부름을 시킬 때 신이 난 우리 형제들은 날래게 뒷산으로 달려가 솔잎을 따왔다. 그리고 세배 다니는 추석 명절은 아니라도, 이집 저집 몰려 다니며 송편을 얻어 먹었는데, 송편 속에 햇콩을 넣기도 했지만 검정깨를 넣으면 훨씬 고급스런 송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때 도시에 나갔던 동네 형들과 누나들이 고향에 선물을 잔뜩 사 가지고 돌아와 집집마다 선물 자랑이 한창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옛날의 추석 추억에 잠겼는데 마누라가 한 마디 던져왔다.

“에휴! 근디 올해 추석은 연휴가 하두 길다 보니껜 벌써부터 사람들이 외국으루 내빼구 시내가 썰렁허다네유! 그렁께 우리의 추석 명절은 이젠 추억속에나 있는가뷰! 안 그렁감유? 호호!”

 

이은집 :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71년 창작집 <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등단. 저서 <통일절> 외 35권. <헤르만 헷세 문학상> 등 16개 수상.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방송작가와 작사가로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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