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우의 영등포 역사정치
■ 여의도시범아파트의 건설, 홍보, 분양을 직접 진두지휘한 ‘두더지 시장’ 양택식
와우시민아파트 붕괴사고로 1970년 4월 16일 사표가 수리된 김현옥(金玄玉, 1926-1997) 서울특별시장의 후임으로 1966년 제3대 철도청장과 제4대 부산직할시 부시장, 1967년 제11대 경상북도지사를 역임한 양택식(梁鐸植, 1924-2012) 제15대 서울특별시장이 1970년 4월 16일 취임한다(매일경제 1970/4/17, 1면). 일명 “두더지”, “일요일 없는 컴퓨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양택식은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앞장서서 이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김광중 2015, 249).
그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의 참극인 육영수(陸英修, 1925-1974) 여사 피격사건의 책임을 지고 같은 해 9월 2일 시장직에서 물러나기까지 약 4년 4개월여 재임기간 동안 신시가지 개발로 서울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1) 김현옥 전임 시장이 시작한 ‘여의도’와 ‘영동1지구’의 도시개발 촉진과 (2) 자신이 시작한 잠실지역 도시개발 기반 구축에 몰두한다(서울역사박물관 2015, 245).
양택식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동시다발적 건설사업으로 빨간불이 켜진 서울시의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일로 이를 위해 그는 (1) 조성된 여의도 택지를 매각하고, (2) 이곳에 고급아파트 단지를 건립하여 분양할 것을 지시한다(서울역사박물관 2020, 48). 실제로 양택식은 여의도시범아파트의 건설, 홍보, 분양을 직접 진두지휘한다(손정목 2003, 77; 서울역사박물관 2015, 71).
그 결과, 서울시는 입주자들로부터 총 공사비 60억 2,700만 원을 공모하여 착공 1년 만인 1971년 10월 30일 완공한 지상 12층, 24개 동, 1,596세대의 여의도시범아파트는 한국 최초로 (1) 지하공동구 건설을 통한 냉・온수, 난방, 전기, 전화 등을 시설하고, (2) 아파트 내부에 12인승 엘리베이터 24대와 에스컬레이터 2대를 설치한 “최대규모의 최대시설”로 현대식 고급아파트의 전형(典型)이자 단지 건설의 시범(示範)이 된다(서울역사편찬원. 2021, 193-4; 서울역사박물관 2014, 38).
서울시는 김현옥 전임 시장이 건축가 김수근(金壽根, 1931-1986)에게 1968년 1월 의뢰한 「여의도 도시계획안」을 홍익대학교 박병주(朴炳柱, 1925-2015) 교수에게 새롭게 의뢰하여 (1) 20만 평 규모로 조성할 예정이던 상업업무지구를 16만 평으로 축소하고, (2) 그 대신 16만 평으로 예정되어 있던 주거지역을 19만 평으로 늘려서 이를 고밀도・고층으로 개발하는 「여의도 종합개발계획」을 1971년 수정・공개한다(서울역사박물관 2020, 46-8). 여기서 여의도시범아파트는 「여의도 종합개발계획」의 ‘선구적 사업’이자 ‘전략적 수단’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담당한다(서울역사편찬원 2021, 308; 서울特別市 永登浦區 1991, 223).
학교시설과 함께 여의도시범아파트 24개 동을 동시에 건립하여 중산층 유치 전략을 추동한 양택식은 여의도 개발 촉진책으로 (1) 1973년에는 서울대교[마포대교]를 가설(架設)하고, (2) 1974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 등 3개의 방송국, 증권센터,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여의도 이전을 추진하면서 여의도 택지매각 및 개발을 순조롭게 진행한다(서울역사박물관 2015, 245).
여의도시범아파트 ④
여의도 서재 “관수재” 주인, 시인 구상
■ 시인 구상의 여의도시범아파트 서실(書室) 관수재(觀水齋)
새하얀 모시옷 삼베적삼 정갈히 차려입고 여의도시범아파트 등나무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던 시인 구상(具常, 요한 세례자, 1919-2004)을 회억(回憶)한다. 우리의 세속적 삶을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 들기 전에 사는 찬류인생(竄流人生)”으로 본 가톨릭 신자 구상은 수사(修士)나 선승(禪僧)과 같은 삶을 추구하면서도 늘 존재(Sein)와 당위(Sollen)의 괴리감 사이에서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윤리적, 신앙적 엄격성과 진실성을 추구했다(김봉군 2002, 298).
이러한 구상 시(詩)의 산실(産室)은 수 천 세대가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團地)(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17동 46호)속 30평 공간에서 비롯한다(조선일보 1977/6/8, 5면). 그는 문인(文人)으로서 ‘집필사무실시대’를 여의도시범아파트에서 활짝 연다(동아일보 1991/12/7, 29면). 아파트 생활이 일견 “닭장 안에서 사는 것” 같다면서도 그는 매일 오후 ‘닭장’에서 벗어나 ‘넓은 공간’인 한강변으로 나와 윤중제(輪中堤)를 반바퀴 가량 소요(逍遙)하며 “자기에게 은혜로 베풀어진 것의 소중함”과 오롯이 마주한다(조선일보 1977/6/8, 5면).
구상의 서재명은 관수재(觀水齋). 비록 방의 크기는 작았지만, 집필하는 책상 바로 앞에 나 있는 작은 남향창의 햇살 무리(群)와 그것들이 책상 둘레에 서리게 하는 눈부신 무리(暈)가 그의 글에 언령(言靈)의 기운으로 깃들게 느껴졌다는 전언이다(성찬경 2002, 374). 그가 남긴 시(詩) ‘한강원경’을 통해 그가 머물던 시간과 공간을 마주한다.
그는 장성한 차남 성(1952-1987)을 폐결핵으로, 장남 홍(1948-1997)을 폐렴으로 차례로 잃고, 1993년 아내를 떠나보낸 후 2004년 5월 영면한다(배봉한 2022, 12-6). 그의 사후(死後)인 2007년 2월, 문화관광부는 「사단법인 구상선생기념사업회」를 인가한다. 영등포구는 2009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른 세계적 문인으로 타계하실 때까지 30년 넘게 영등포구에서 거주하면서 활동하신 구상(具常)시인의 높은 작가정신을 기리고, 대한민국 문학의 발전은 물론 우리나라 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디딤돌을 마련하기 위하여 구상(具常)시인 기념사업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구상(具常)시인 기념사업 조례」를 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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