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우리동네 영등포

 

영등포역 개설은 서울역보다 앞선다. 경인선 철도가 경부선보다 1년 정도 빠르다.

경부선 철도는 1900. 7. 8일 개통했다고 한다. 영등포역 철로를 기점으로 영등포동, 당산동, 문래동, 양평동의 대부분은 준공업지역이다.

공업을 육성하기 위한 조치이고 공장들이 들어섰다.

전쟁 중의 공장은 군수물자를 조달하였을 테고 해방이 된 뒤에도 공장은 형태를 바꾸어 가동하였을 거다.

밥 먹여주고 기술 가르치는 공장에는 시골에서 먹고살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과 농사를 짓다 올라온 노동자들로 넘쳐났을 테고 노동 공급이 넘치니 노동자들은 소모품이거나 그 이하의 대접을 받았을 거다.

 

 

70년대까지도 영등포는 시골에서 기차타고 올라온 사람들의 기착지였다고 한다. 먹고 살 길을 찾아 무조건 서울로 올라와 우선 영등포역에 내려 방편을 찾다 눌러 앉은 경우도 있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는 중간 기착지 말이다. 하소연할 데도 없이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을 도림성당이나, 영등포산업선교회 등이 그들을 보듬어 주었다고 한다.

국회대로 당산동, 영등포경찰서 인근에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와 하이서울유스호스텔, 하자센터가 모여 있다.

유스호스텔 뒤, 노총 서울지역본부 앞에 노총 발상지 사적비가 있다.

1946310일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을 결성하는 산실 역할을 한 용산공작소 터였다고 한다.

51일 노동절로 바뀌기 전, 근로자의 날인 310일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큰 공장이 도심 밖으로 이전하면서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서기도 하고 번듯한 도로와 녹지공간이 만들어졌지만 영세한 공장들이 남아 공장지대를 유지하고 있고 철길 위쪽은 아직도 대부분이 준공업지역이다.

영등포는 노동운동의 발상지이고 아직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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