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노천의 우리역사 산책

정노천 시인
정노천 시인

현재 신길역 주변에도 전설들이 많이 서려있다. 과거 강가인 만큼 여러 가지 전설이 탄생했고 여의도를 건너가는 나루터도 있었던 곳이다.

샛강에 물이 모이는 방학호가 있어서 방학이라는 설과 소나무 숲이 빼어나 학이 춤춘다고 해서 붙었다는 설, 도성으로 가져가는 쌀을 찧던 방앗간이 있어서 붙었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초기엔 ‘양화나루’가 ‘벋은고지 나루’라는 어원을 적용시켜 본다.

<동국여지승람> 금천현조에 암곶(岩串)이라는 포구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바위곶이(岩串)와 연유된 방하곶진(方下串津) 나루터라고도 불렸다. 이곳 역시도 ‘바위 끝’이나 바위가 돌출된 곶의 의미로 불린 듯하다. 소위말해서 ‘바위 끝(곶)’ 혹은 ‘바위곶이’로 불렀을 것이다. ‘바위고지’가 음차변화로 ‘방학곶이’로 변화해왔던 것이다. 여기가 방학곶나루(현재 샛강다리)가 있었다고 하듯이 초기 강변도로가 생기기 전엔 샛강을 건너가는 작은 나루가 여의도로 연결됐다. 그리고 여의도 모래벌판을 가로질러 마포로 건너가는 마포나루를 건너 마포로 건너갔다. 
인근에는 느티나무와 귀신바위가 있었던 돌출된 바위 즉 낭떠러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샛강 가에 있는 큰 바위 아래로 강물이 흘렀는데 수심이 깊어 이곳에서 놀던 사람들이 주위 풍경에 도취되어 실수로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많아 귀신이 붙었다고 하여 귀신바위라고 불렀다. 또 바위 옆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하나 서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1790년대 정조 때 왕비가 이곳을 지나다 주위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 잠시 쉬어갔던 기념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어 마을의 재앙을 막고 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1년에 한 번씩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여의도 개발로 절반쯤 묻힌 바위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 동네에는 윤정승이 한강물이 넘치는 바람에 물살에 휩쓸렸을 때 잉어가 나타나 등에 태우고 이곳 강기슭에 내려주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후 후손들이 이곳에 방학곶이 부군당을 지어 한 해 3차례씩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지금도 방학곶이 부군당에서 마을의 공동체가 되어 매년 제의도 올리고 있다. 영등포문화원은 이 설화를 ‘잉어가 사람 구했네’라는 마당놀이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부군당은 방학호나루를 건너는 사람들의 뱃길 안전을 비는 역할도 있었고 상습 수해 지역에서 물난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기원도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곳은 넓은 백사장과 새들이 있어 아름다웠고 샛강 변으로 툭 튀어나간 바위와 낭떠러지가 있었음을 지명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강 양쪽으로 강변도로를 조성하면서 한강의 풍취를 훼손하고 한강 접근성마저도 치졸하게 만들어 놓았다. 현재 방학곶이나루터는 물론 귀신바위, 느티나무도 강변도로 사이로 들어가 접근이 어렵게 된 점이 못내 안타깝다. 

정노천(시인, 우리역사원형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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