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봉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SE코디前 SK 전남도시가스 대표이사
한봉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SE코디前 SK 전남도시가스 대표이사

지난해 5월에 영등포구청 별관 사회적경제 지원센터에 입주했으니 이제 두 번째 목련과 벚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누구에게나 아니 정년퇴직을 하고 60을 훌쩍 넘긴 우리에게도 여전히 빠르게 지나갑니다.

입주기업에 대한 대면심사 시에 팀장님이 왜 하필 영등포구에 둥지를 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달라 하셨습니다. 예기치 않은 질문에 조금은 얼떨결에 우답(愚答)을 했었습니다. ‘교육과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대기업 퇴직시니어들이 한데 모여 영등포구의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오니 저희들의 입주를 허락 하여 주십시오하고 들어왔건만 이제와 뒤돌아보니 거의 빈손에 가까워 감히 봄꽃을 쳐다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와 구차한 변명을 오늘에야 털어놓으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세상의 理致(이치)처럼 내 탓도 네 탓도 아닌 양비론을 택하기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합니다.

지난 3년 동안에 지방 소도시 사회적경제의 활성화를 위하여 매년 30여 차례를 왕복을 하였건만 제 욕심만큼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지,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지는 몰라도 환경과 의식의 변화는 쉽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종국 에는 다음 달쯤이면 다시 기대를 가지고 방문하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70년대 초, 중학교에 다닐 때 소원이 평범(平凡)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시시하다고 했지만, 요즘같은 세상에서 평범하게 입고 먹고 살기는 보통 평범이 아닙니다. 그렇듯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인 듯 합니다. 그리고 시류에 흘러가지 않고 근본을 중시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요즘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 가서도 심심찮게 바닥신호등을 볼 수 있습니다. 건널목을 건널 때에도 핸드폰을 보는 젊은이들을 보고 혀를 찼던 Latte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간 데 없고, 스마트폰 금지 안내판도 없어지고 그 자리에 바닥신호등이 대신 자리를 잡고 있습니 다. 아직은 지하철 경로석에 앉기에도 그렇지만 본디 앉기를 싫어하는 편입니다. 한쪽 줄에 대개 일곱 분이 앉을 수 있는데 언제 한번 쳐다보시기를 권합니다. 일곱에 적어도 여섯은 핸드폰을 보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눈이 아파 책을 보지 못한다는 아저씨는 핸드폰으로 바둑을 보고 계시고, 아주머니는 검지 손가락으로 요즘 패션계 동향을 체크하고 계십니다. 무료함을 달래느라 보는데 뭐라 할 수는 없지만, 핸드폰만 보게 되면 나만 보게 되어 네가, 우리가 안 보이게 됩니다.

이렇듯이 예사로이 스쳐가는 일상에서도 조금의 자각, 주의를 게을리하면 휩쓸려 가는 법입니다. 그래서 더 쉽지 않은 세상인가 봅니다. 언젠가 우리의 영웅이었던 역도의 장미란 선수가 한 말이 있습니다. 생각없이 살다 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기본에 충실 하자였는데 서설(序說)이 길었습니다.

지난 주에 온라인으로 사회적경제 교육을 들었습니다. 시장경제, 자본주의, 브레튼우드 체제, 소셜임팩트 등등 공허하고 어려운 얘기들이 쏟아졌지만 감이 안 잡힙니다.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다른 모양입니다. 어렵게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쉽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적경제는 사실 우리의 일상 그 자체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십시오. 밤새 잘 잘 수 이었던 것은 경비, 아침은 쿠팡, 요즘은 귀하지만 어머니의 밥, 입고 있는 옷은, 신발은, 버스나 지하철 등 교통수단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주위 이웃의 도움, 노력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젊은이들의 꿈이 외롭지 않게 혼자 사는 것이라 합니다. 진정 내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가 없다고는 하면서도 나홀로 볼링, 혼밥, 혼술에 혼놀까지 유행이라 합니다. 가끔은 그 마음이 읽히지만 누구도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같이 더불어 살자는 것이 사회적경제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예전에 마르크스는 아침에 사냥하고, 오후에는 물고기를 잡고, 저녁에 소떼를 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한다고 했습니다. 가능한 일일까 싶습니다. 나의 오늘 하루가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협조와 공헌- 그것이 이기심의 발로(發露)였다 하여도- 이 뒷받침되어야 가능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주변에 사회적·경제적 약자들과도 같이 가자는 것이 사회적경제의 시작이요,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의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 활동이 곧바로 사회적경제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굳이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고,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 사치(奢侈)라는 것이 이런저런 명품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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