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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따뜻한 겨울 낙엽■ 문래동에서 우리 즐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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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31  09: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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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이경희(慧文, 문래동)

 

수필

 

콧속으로 칼끝에서 나는 쇳가루 냄새가 들어온다.

“하하하하 오빠? 여기가 문래 창착촌이야?”

작은 키에 하이얀 짧은 치마를 나풀거리며, 귀여운 눈동자의ㅡ 저녁 어스름에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ㅡ 예쁜 아가씨가, 이제 막 직장을 얻어 그녀의 키보다는 족히 1.5배가 넘을 키와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체의 남자의 옆에 기대여, 공장들이 아직도 골목을 지키는 곳이 많은 문래동 한켠을 걷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따뜻한 사랑이 울려 퍼진다.

나는 오래 전 이곳으로 이사해서 밤낮으로 잠자는 사각형 속에서만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어쩌다 주말이면 나의 할머니의 키만 한 건물 한 구석 식당에서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 고등어 김치 찜을 가격 대비 만족이라는 별 풍선을 날리며 미소 속에서 한 끼를 온몸으로 보내고, 오래 된 트레이닝 바지와 낡은 웃옷도 부담 없다며, 간혹 “찌이익 찍 챙챙” 소리가 잔존하는 공장 어디선가 들리는 문래만의 독특한 소리에 익어 버린 귀를 그저 일상인 양 익숙하게 세우고, 좁은 골목을 지나쳐 다시 상자 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명의 양면을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그 옛 시절 내음이 살그머니 내 온몸을 감싸는 여기 따뜻한 영등포는 발아래 낙엽이 착 감긴다, 레전드처럼.

한가한 척 평일에, 영등포구 사잇길을 걸을 때면, 내게 언제 부터인지 발에 밟히는 바스락 소리의 낙엽들이 자꾸만 말을 걸어온다. 그저 은행잎이려니 아니 그냥 알 수 없는 ㅇㅇ잎이려니......그렇게 무심하게 옷깃에 앉아 있는 그 애들을 털고 발아래서 말을 거는 그 네들을 밀어 내고, 바삐 언제나 서둘러 발길을 돌려, 가고 오기만을 반복한다. 어느 겨울, 가슴이 시리고 내 머리가 텅 비어 온 12월, 난 자꾸만 차갑게 부는 가을 끝 바람과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온몸으로 밀쳐 내며 발아래에서 나에게 손을 내미는 그 애들과 마주치기 시작한다.

쏴아쏴 쓰쓰쓱 바르르 데굴데굴 떨어져 넘어 지고 달리다가 어디론가 멀리 나르기도 하는 그 네들을 넋 놓고 그냥 그 자리에서 얼음 되어 바라보노라면 뜨겁고 가느다란 눈물이 천천히 흐른다. 영등포를 감싸는 물길ㅡ한강과 가까운 가로수길을 걷다 보면 가슴이 아린다. 무너져 내린 첫사랑이 갈비뼈를 비집고 들어와, 낙엽 되어 그 때 그 늦가을로 나를 끌고 가니. 한마디 사랑한단 말도 못 해 보고 그저 바라만 보다 떠나보낸 그는 지금도 내 곁을 못 떠나고 한 걸음만 저만치 돌아서서 20대 내 사랑으로 남아 있다.

작은 노오란 잎도 어느 새 짙은 브라운으로 변신한 채, 넓은 파스텔 색에 몸부림치면서도 오랜 시간 땅과 친한 나의 옆줄이 금빛인 동화 속 운동화, 발아래서 자꾸만 떨치고 나가지 못한다. 밟히는 그들은 울지도 반항 하지도 못한다. 부스스 바사삭 쓰쓰윽 씨익 씨이 이렇게만 알 수 없는 언어를 내뿜으며 비밀의 코드를 자꾸 바꾼다.

“뭐야?”

물어도 언제나 노답이다.

돌돌 말려진 몸체 그리고 여기저기 찢기운 말라버린 모습을 하고 영등포구 거리ㅡ 거기 시멘트 바닥과 좁은 흙바닥 어귀를 차지하고 떨고만 있다.

“왜?” 라고 또 물어도 역시 노답이다.

“너, 겨울 낙엽이잖아?”라고 하고 난 주머니에 손을 넣고 툭툭 발길질을 해 본다.

‘추운데......’

길가에 누워서 맨몸으로 뒹구는 그 애들에게 난 길거리표 목도리조차도 줄 수 없는 12월의 매몰찬 바람에 눈물만 피잉 돈다.

“휘잉 휘잉잉~”

바람은 어디든 보낼 기세로 얇고 찢겨진 애들의 몸을 날리고 또 날린다.

몇 발자국을 걷다 난 놀랍게도 따스한 빗자루를 든, 커다란 빌딩 앞에서, 짙은 군청색의 제복을 입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여기저기 흩어져 떨고 있는 애들을 가지런히 모아 따뜻한 보금자리로 모아모아 부둥켜안고 떠나게, 계속해서 비질을 하고 계셨다.

오후의 햇살이 할아버지의 얼굴을 멋지고 푸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아아~ 저 모습~따뜻하고 살만해~열심히 살자!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여는 영등포구는 따뜻해~”

따로따로 이리저리 휘말려 헤매이던 겨울 낙엽은, 함께 부둥켜안고, 이제 봄의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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