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규환 위원장(영등포구환경委․약학박사)

미국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대표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이면(裏面)에는 흑인노예제도처럼 인종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예로 메릴랜드 주(州)의 볼티모어 시(市)는 미국의 사회문제를 응축한 대표적인 도시이다.

제조업종의 몰락으로 낙후된 도시로, 사회가 양극화 상태이다. 이로 인해 빈곤과 인종문제는 오늘날 도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될 정도로 흑인주민의 폭동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때마침 금년 현지시간으로 4월 27일 흑인청년인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이 열렸다.

실업자인 그레이는 마약 등과의 연루로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특히 체포당시 경찰을 피해 도주했다는 이유로 연행되는 과정에서 척추를 심하게 다쳤다. 그러나 경찰은 응급조치를 하지 안 해 혼수상태에서 일주일 만에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흑인에 대한 백인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의한 것으로서 흑인 반발을 불러 시위로 이어졌고 이후 시위대는 시가지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성난 시위대와 경찰 과잉진압 과정에서 폭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번 폭동사건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한 ‘프레디 그레이’는 평생 동안 납(鉛)중독에 시달리며 모진 고통을 겪어왔다.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볼티모어 지역은 납중독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납중독 원인은 수십 년 전부터 이 지역의 집주인이 가난한 흑인을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지으면서 값이 싼 첨가제로 납이 함유된 페인트로 집 안과 밖을 칠한데 기인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난 그레이는 생후 9개월부터 혈액 중에 납이 검출되었으며 더욱이 생후 22개월 때에는 당시 납의 기준농도치보다 거의 두 배 정도나 높은 수치가 나타났다.

한편 ‘아동납중독 종식을 위한 연맹’의 대표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93년 볼티모어에서 조사한 결과 약 1만 3천여 명의 아동이 납중독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현재에 이르러서는 더욱 증가되어 3만여 명이 될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더욱이 이와 같이 납 오염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성장해온 그레이는 납중독 되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레이의 성격이 과격하고 포악(暴惡)한 행동으로 비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단언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보겠다.

납은 오래전부터 인류가 사용한 중금속 중 하나로, 약 6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색깔조성이 잘되어 페인트안료(顔料)나 화장품원료, 도자기유약(釉藥) 등 산업전반에 널리 사용되었다. 납은 부드럽고 가공하기가 용이하여 인쇄활자나 상수도의 도관(導管)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통조림가공식품 용기 제조과정에 납땜으로 인한 식품오염 등으로 인간의 납중독 사례가 많았다.

체내에 흡수된 납은 분변(糞便)으로 배설되지만 주로 뼈 속에 축적되므로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야 독성이 나타나게 된다. 때문에 인간이 납중독으로 인해 건강장해가 확인된 경우에는 이미 치명적으로 된 상태이다. 심한 경우에는 1~2일 이내에 사망하기도 한다.

납중독은 조혈(造血)기능의 억제로 빈혈은 물론 뇌와 신경계 등에 영향을 주어 정신이상과 신체마비를 일으킨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에는 비록 소량일지라도 지능지수가 떨어지고 주의력이 산만해진다. 또한 과민반응에 의한 성격이 포악해지는 건강장해를 일으킨다.

한편 되돌아 보건데 고대사(古代史)에서 융성했던 로마제국이 멸망한 원인에 대해에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중 하나로 환경오염문제를 추리(推理)해볼 만도 하겠다. 당시에 비교적 많은 양의 납이 생산되어 생활주변에서 이미 상수원 등 위생시설에 이용되었다. 특히 상류지배층인 귀족사회에서는 호화물품으로 여겨졌던 납으로 만든 기구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공교롭게도 후손(後孫)이 적고 황제(皇帝)중 여러 명이 말년에 성격이 포악하고 정실질환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 혹시나 납의 중독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불문하고 각 오염물질에 따라 깊은 연관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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