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집 소설가(문래동)

   

▲ 이은집 작가

 

“아이고! 올처럼 기쁘게 맞는 해두 없을 것 같네유! 당신두 안 그류?”오늘도 8학년에 가까워진 우리 부부는 아침식사를 옛날 젊어서 한교 선생을 하던 시절처럼 일찍이 먹고 있는데 마누라가 밥숟깔을 든 채 건네오는 말이었다.

“얼라? 누굴 기쁘게 맞는다구 그려? 우리집에 무슨 손님이 온다구?”

“에잉? 요즘 뉘네 손님되어 댕기는 사람이 워디 있다구 그류? 내 얘긴 낼 모레면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 된께 그러쥬!‘

“어엉! 추석? ...몇년 전 우리 6형제가 우리집에서 합동으로 추석을 쇨 땐 북적북적 즐겁게 보냈지만, 이젠 각자 집에서 추석을 쇠기루 한 다음부턴 추석이 오히려 쓸쓸헌디 뭐가 기쁘다구 그려?”게다가 남매인 우리집 애들은 결혼 뒤론 추석날에 일찍 와서 아침만 먹고는 아들 내외는 처갓집으로 가고, 딸 내외는 시댁으로 쪼르르 내빼기 때문에 설추석 같은 명절에는 우리집이 더욱 적막강산이 되는 것이다.

“에유! 우리 서울살이 한 지두 50년이 가까운디, 그래두 젊어선 기차표 사기가 그리 힘들어두 고향찾는 설레임에 추석이 기뻤구유, 애들이 다 컸을 땐 고향 부모님이 서울루 역귀성하는 추석을 쇴을 땐 또 서울 사는 형제네 식구들이 다 우리집에 모여 더 푸짐했잖유?

“아암! 특히 차례를 지낸 뒤 온 집안식구가 거실에 함께 모여 윷놀이로 각자 모나 윷이 나오면, 첫 바퀴엔 1,000원! 두 바퀴째는 2,000원, 세 바퀴째는 4,000원! 네 바퀴째는 8,000원! 다섯 바퀴째는 16,000원을 상금으루 주면, 추석명절 열기가 후끈 달아 시간가는 줄두 모르게 즐거웠응께!”

“암만유! 허지만 역시 추석명절은 어린 시절 고향에 살던 때가 제일 좋았쥬! 그 지절만 생각하면 지금두 추석이 가슴 설레인당께유!”

하면서 마누라는 망연히 식탁 건너편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순간 나에게는 어려서 내 고향 청양에 살 때 추석을 보내던 기쁘고도 즐거운 추억이 떠올랐다.

“즈이아부지! 올 추석두 을매 안 남았는디 슬슬 추석 준빌 허셔야쥬?”

“어허! 추석이라구 별건감! 영전뜰 논의 노인벼루 햅쌀 마련허구, 청양읍내장에 가서 차례상꺼리 봐오구, 낡은 방의 벽지 좀 새루 바르구, 집안대청소까지 허면 워떤 명절손님이 와두 너무새 부끄럽진 않지, 뭘!”

“아유! 즈이아부진 쉽게두 말씀허시네유! 난 애들 추석비슴(추석빔)에 차롓상 놋그릇두 닦어야 허구, 부뚜막 맥질두 쳐야 허구, 송편에 나박김치에 명절음식 준비두 여간 큰일이간듀!”

이때 나는 특히 <추석비슴> 얘기가 나오면 속이 상했으니, 그건 우리집은 10남매나 되어 모두 추석빔을 해주지 못하고, 키가 훌쩍 큰 형제자매나 새로이 해주고 나처럼 영 키가 안 크는 아이는 새 추석빔 대신에 물려입게 마련이었단 것이다.

“얘! 은집아! 넌 먹는 게 다 워디루 가구, 맨날 키가 그 타령이냐? 올해두 넌 형꺼를 물려입두룩 해여!”

그래서 어머니한테 이런 소리를 듣게 될 땐 너무 속상해서 뒷곁으로 가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추석날이 되면 차례가 끝난 후 동네의 또래들과 함께 떼지어 추석음식을 얻어먹으러 다녔는데, 송편을 비롯한 음식을 너무 과식하여 밤에는 설사로 밤새 뒷간을 드나들기도 했으니...! 내가 이런 추석 추억에 잠겼을 때 마누라가 건네왔다.

“여보! 근디 올 추석엔 연휴가 짧어선지 더 쓸쓸헌 것 같어유!”

“에휴! 날마다 매스콤에 최저임금이네 뭐네 떠들었쌓구, 불경기 소식뿐인께 추석명절인들 무슨 신바람이 나겠어?”

“글쎄유! 허지먼 올해의 추석달은 엄청 밝은 거구먼유!”

“그건 또 왜?”

“아! 지난 여름 111년만의 찜통더위를 견뎌낸 과일이 더 잘 여물구 익은 것처럼, 그렁께 추석달두 그만큼 더 휘영청 밝을 것 아뉴?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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