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아타카마

   
▲ 노희정 시인(육필문학관장)이 칠레 아타카마 모래사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드디어 달나라에 착륙했다.

지구 몇 바퀴를 돌다가 정착한 것일까? 나는 가상의 우주인이 되어 둥실둥실 허공을 꿈속처럼 떠다닌다. 이건 꿈이 아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희귀하면서도 신비한 달나라가 분명하다. 달에 착륙한 것처럼 착각할 만큼 달 표면 같은 풍경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울퉁불퉁 제 멋대로 생긴 땅은 사뭇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도전적인 남성의 성격을 닮았다. 칠레 아타카마 달의 계곡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다. 이곳은 해발 2400m의 고지대 지형이라 연중 비가 오지 않아 일 년 내내 건조하다고 한다. 이 땅은 강원도 봉평에서 핀 메밀꽃을 흩뿌려놓은 것 같은 소금계곡과 걷기조차 힘든 지형으로 형성된 죽음의 계곡이 공존한다. 이렇듯 건조한 땅에 석상으로 빚어진 세 분의 마리아상이 관광객의 무사여행을 위해 기도하며 서 있다. 특히 이 곳 아타카마는 세계에서 별을 관망하기가 가장 좋은 장소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산페드로데 아타카마에서 가장 높은 빅 듄(Big Dune)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달의 계곡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양쪽 모양이 다르다. 한쪽은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사구가 있고 반대쪽엔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암스트롱(1969년)도 달나라로 가기 전 이곳에 와서 체험을 하고 갔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빅 듄에 오르는 시점은 선 셋 시간이다.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올라왔다. 사구에 노을이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이번 남미 여행을 동행한 신부님과 힘께 전망 좋은 곳에 앉았다. 그동안 수많은 일몰을 보았지만 빅 듄에서 본 일몰은 오늘까지 살아 온 삶의 무게들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 같고 검붉은 빛에 내 혼이 서서히 빠져들며 빛을 받들고 싶은 숭고한 느낌마저 들었다. 붉은 바람 한 줄기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억겁의 시간이 흘렀어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렬한 빛을 내며 지는 일몰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칠레의 한 시인이 떠오른다.

칠레의 자랑이자 영웅이며 세계문학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파블로 네루다(1904년~1973년)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인간이면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끊임없는 변화를 대변했다.〈황혼의 노래〉〈스무 편의 사랑의 노래와 한 편의 절망노래>〈조물주의 시도〉〈고무줄 새총에 미친 사람>〈대지에 살다〉외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네루다는 67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수상 연설 중 일부다. "저는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동떨어진 어느 한 나라의 이름 없는 변방에서 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시인들 가운데서 가장 소외된 시인이었으며, 지역이 한계에 갇힌 저의 시 안에서는 고통의 비가 내렸습니다." 사랑의 시를 쓴 시인의 입에서 고통의 비가 내린다고 했다. 시는 그만큼 처절한 영혼으로 쓰기 때문일 것이다.

네루다의 시세계를 천양희 시인은 이렇게 평했다 ‘시와 삶에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 네루다는 "시인의 삶은 그의 시에 반영되어야 하며, 그것은 예술의 법칙, 인생의 법칙"이라고 주장한 사실주의자였다. 사실주의자와는 반대로 삶과 문학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학주의자들이다. 칠레의 민중 시인이며 외교관이자 상원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네루다는 7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천재시인이다. 연애시의 혁명을 일으켰던 유명한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노래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은 그의 나이19세에 씌어 진 시들을 묶은 것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2010년도 칠레 광산이 무너져 33명의 광부가 69일 만에 구출 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때 광부들은 갱에 갇혀 생사가 불투명할 때 네루다의 시를 읽으면서 69일을 견뎠다고 한다. 그만큼 네루다의 시는 칠레의 민중들에게 희망을 준 시인이었다.

내 삶까지 이끌고 가려는 일몰 앞에서 나는 네루다의 삶을 생각했다. 누구보다 세상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네루다의 정신이 이 아티카마 사막 빅 듄의 언덕을 넘어 가는 선 셋의 힘이라 믿었다. 지금 이 순간 태양은 지는 것 같지만 내일 아침 찬란한 빛으로 일어서는 일출처럼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의 정신이 네루다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산티아고에 있는 상점에 들러 파블로 네루다의 초상하나를 샀다.

그의 삶이 언제나 내 정신 속에 살아있어 게으른 나를 눈 뜨게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영등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