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노천의 우리역사 산책

   
▲ 시인 정노천

조선의 군기(軍旗) 바탕에 태극(太極)ㆍ낙서(洛書)ㆍ8괘(八卦)를 그렸다. 동아시아권 전역에서 군대를 상징하는 깃발로 통용된 깃발이다.

불꽃 모양으로 된 5색의 띠가 있는데, 이것은 5방에 응한 것이며, 별자리 28수를 설명한 것이다. 좌독기는 행진할 때 주장(主將: 장수 중 우두머리)의 앞에 세우고 멈추면 장대(將臺)의 왼편에 세웠던 사각형의 깃발이다.

조선시대의 군용 깃발 중 가장 진중하면서도 화려한 깃발은 좌독기다. 전장 나갈 때에도 주장의 뒤에서 주장의 위용을 드러냈던 깃발로 군사들이 전쟁의 승리를 위한 피의 맹세를 나눌 때 바로 이 좌독기 아래서였다. 또한 군사들 중 군율을 어겨 죄를 물을 때 관이전으로 조리를 돌린 후 좌독기 아래서 마땅한 형벌을 내리기도 했다.

좌독기(坐纛旗) 중심에는 태극기의 원전인 복희(伏犧) 팔괘에 해당하는 괘(卦)와 생성 원리인 반원 형태가 그려져 있다. 또 외곽에는 낙서 즉 복희 팔괘가 그려져 있다. ‘태극’은 ‘천왕(한웅)기’라고 한다. ‘치우천왕기’, ‘좌독기’, ‘둑섬기’ 등으로도 불린다. ‘좌독기’는 주장(主將)의 기(旗)로 행진할 때는 주장의 뒤에 서고, 멈출 때면 장대(將臺)의 앞 왼편에 서는 검은 바탕의 사각기(四角旗)다. 좌독기는 사방(四方)을 주관한다는 의미로서 임진란 이후 조선 수군에 도입됐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태극기로 변형돼 통제사(統制使)의 기함(旗艦) 돛대 위에 게양됐다. 임란 때 이순신 장군의 전투함에서 많이 사용됐다. 이순신 장군은 주역에도 밝았다. 난중일기 곳곳에 주역 점례가 나와 있으며 실전에 두루 사용했다고 전한다.


좌독기는 장수의 상징에서 임금의 상징으로 변했다. 구한말에 약간 변형되어 고종의 어기(御旗)로 쓰였다. 이것이 곧 태극기가 됐다. 태극기의 유래가 좌독기이므로 치우의 사당 독신사가 있었던 뚝섬은 태극기의 산실이라고 볼 수도 있다.

태극기는 옛날 고조선 전의 배달시대의 복희로부터 시작됐다. 치우가 사용했고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서 사용했다. 나중엔 임금의 거동에도 사용했고  요즘 아이들이 전통 고취차원에서 많이 그리고 있다  주자학을 도입한 조선 이후 우리고유의 사상도 잃어버렸고 태극기도 잃어버린 것이다. 태극은 절대 지나(중국)가 만들어낼 수 없는 기(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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