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 시인<육필문학관장>

   

▲ 개성 통일관 앞에서 남편인 윤준수 씨와 한 컷.

 

“작가 양반 이따 나올 때 벌금 내야 되여 알가시여?”

북측출입국 수속을 하면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가방 조사를 당해야만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임진강역까지 가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주의 사항을 소홀히 들은 탓이었다. 당일치기라 항상 들고 다녔던 가방을 무심히 들고 개성행에 올랐던 것이 화근이었다. 내 가방 속에는 습작 노트와 A4용지에 시를 쓴 것이 두 장 접혀 있었고, ‘영등포투데이’에 연재했던 술 이야기 23, 24 꼭지의 신문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크” 진땀이 등줄기를 타고 싸늘하게 흘렀다. 내 뒤에 줄서 있는 방문객들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가방을 이 잡듯 뒤지고 대충 넘어가주질 않는다. 분명히 시인인데 왜 출입증 직업란에는 주부로 기입 했느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직업을 속이고 위장으로 기입했다는 것이다. 내 옆에 있던 가이드가 아마추어 작가라서 기입을 안했다고 하니까 아마추어라는 말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남측에서는 작가라고 해도 특별한 자격증 같은 것이 없다고 하니까 그제 서야 수긍을 했다. 아무튼 신문은 압수되고 이따 나올 때 벌금을 내기로 하고는 개성으로 진입했다. 벌금을 내야하는 기분은 몹시 언짢았지만 그들이 내 시를 꼼꼼히 읽었고 내 술 연재를 읽을 것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이번 여행은 지난해 금강산을 갔었을 때 보다 흥분되지 않았다.

북측 안내원 둘이 탔다. 앞에 앉은 안내원은 개성에 관해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고 뒤에 앉은 안내원은 관광객 모두를 감시를 하고 있는 있다. 안내원은 흥에 겨웠는지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노래까지 북한 억양으로 곁들였다. 왕건의 무덤이 차창 밖 저 건너에 있고 송악산이 우측에 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만삭이 된 어머니의 산이라는 송악산을 끼고 박연폭포에 도착했다. 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우비도 없이 비를 맞으며 송도의 삼절중 하나인 박연폭포 앞에 섰다. 황진이가 머리채를 풀어 쓴 시가 박연폭포 아래 룡바위에 굵은 글씨로 나를 반기고 있다. 하늘에서 은하수가 날아 흘러 3천척 밑으로 떨어진다는 내용의 시란다. 황진이의 친필을 대하니 감회가 깊다. 황진이는 이곳에서 막걸리 한 사발과 도토리묵 안주에 어느 선비와 즐기다가 이 멋진 시를 읊었을까. 그 때의 풍류가 몹시 그립다. 송도삼절인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가 있는 절개 굳은 개성에 나는 비를 맞으며 서 있다. 나무뿌리로 만든 지팡이 하나를 샀다. 지팡이에는 작은 쪽박이 달려 있다. 여행을 하면서 목이 타면 물도 마시고 술이 있으면 술로 목을 축이라는 뜻이 숨어 있을 것이다.

박연폭포위로 걸어서 올라가면 관음사가 있다. 불자는 아니지만 고3 아들을 위해 남측 돈을 내고 절을 일곱 번 했다. 관음사 뒤쪽에는 미완성된 문 두 짝이 있다. 문이 뒤에 있는 것을 알아보니 운나라는 소년이 문을 조각하기 위해 강제로 잡혀왔단다. 12살이 된 운나가 한 문짝을 완성하고 다른 문짝을 조각하고 있는데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비보가 날아왔다. 그 비보를 듣고는 슬퍼하다가 어머니의 죽음도 보지 못한 불효자식이 무슨 조각을 하느냐고 도끼로 자신의 팔을 잘라버렸다는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후세에 그의 효심을 알고는 백호에 올라 탄 그의 초상을 조각해 완성된 문에 함께 넣어 주었단다. 지금 세상에 저런 효심 깊은 자식이 어디 있느냐며 엄마들은 한마디씩 한다.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운나처럼 효심 깊은 자식이 분명히 있을 거라 확신하며 관음사를 내려왔다.

 

이런들 엇떠하리 저런들 엇떠하리

만수산 드렁츩이 얽혀진들 엇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의 하여가-

 

이몸이 죽어죽어 일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잇고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잇으랴 -정몽주의 단심가-

 

정몽주와 이방원의 시조를 구성지게 읊는 안내원을 따라 정몽주의 선혈이 있는 선죽교엘 갔다. 한 세상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음을 한탄하다 비명횡사한 정몽주의 한이 아직도 선죽교에 서려 있다. 술 이야기가 개성이야기로 길어졌다. 여기까지 이야기 했으니 마저 개성이야기를 해야겠다. 고려 박물관에서 나는 도자기로 만든 봉황술병 한 점을 샀다. 그 매점에서 북한막걸리와 안주를 사서 일행들과 한 잔 마셨다. 점심에 마신 송학소주는 좀 쌉싸름 했는데 막걸리 맛은 그런대로 감칠맛이 났다.

현대아산 가이드는 내게 벌금 낼 달러를 잘 챙겨놓았느냐고 수시로 확인을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북측출입구에서 짐을 점검하고 나더니 나보고 버스타지 말고 대기실에서 앉아있으라고 한다. 일행들은 먼저 버스에 오르고 나는 500백 명 방문객의 수속이 다 끝나도록 기다려야 했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어찌하랴 북측 법을 어겼으니.

한참 후 가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환하게 웃으며 지친 내게로 왔다. 그냥 통과란다. 그냥 통과? 버스에 오르니 남편과 일행들은 나보다 더 긴장하고 있다. 모두들 벌금은 얼마 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몹시 궁금해 했다. 나는 “내가 너무 예뻐서 그냥 봐 주었다.”고 능청을 떨었다. 현대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고 오늘은 이변이 일어났다며 무슨 일이든 만들고 지어내서라도 벌금을 내게 하더니 제일 엄격히 조사하는 신문을 그냥 통과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아마 그들은 내 술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좀 전에 출입문에서 나올 때 내 방문증을 보고 오전에 까다롭게 굴었던 북측 안내원은 “신문에 난 작가 맞디요? 재밌게 읽어시여” 하며 미소를 던져 주었었다. 그들은 아마 내 글을 읽고 의아해 했을 것이 분명했다. 남자도 아닌 여자가 술 이야기를 쓰다니 이해도 안 갔겠지만 그들에겐 생소한 이야기 거리로 등장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들에게 영등포 소식과 연재하고 있는 술 이야기를 던져주고 온 셈이다. 대단한 문화교류가 아닌가 싶다.

이 모든 사건이 술 덕분이다. 어서 통일이 되어 그들과 함께 송악소주, 단군소주, 참이슬, 처음처럼을 박스로 사 놓고 박연폭포 앞에서 마시고 싶다.

 

 

 

 

 

저작권자 © 영등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