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시인. 육필문학관장)

   

▲ 노희정(가운데) 작가가 뉴질랜드 현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작지만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저 바다 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그대만을 기다리리/영원히 기다리리.......’<연가> 중

언제였던가.

첫사랑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라디오에서 달달한 목소리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봄바람처럼 흔들었던 노래, 그 노래는 연가였다. 내륙에서 살았던 나는 연가의 가사에 나오는 ‘비바람 치던 바다’가 늘 그리웠다. 중학교 3학년 때 찾아 온 이른 짝사랑에 빠져 있을 무렵, 이 연가만 들으면 심장이 쿵쿵 뛰곤 했다. 그래 그대만을 기다리리라. 영원히 기다리리라. 다짐했던 마음은 잠시뿐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기다림이 지쳐 증오로 변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 시절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고등학교, 중학생이었을 때, MT나 수학여행을 가면 캠프파이어 주위에 앉아 부른 노래 중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연가다.

이렇듯 7.80년대 우리나라 청춘들이 가장 많이 회자 되었던 노래를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 뉴질랜드 마오리족들의 민속공연 끝에 듣고 있자니 감회가 깊다.

유황냄새 진동하고 집집마다 뜨거운 열기 가득한 마오리족 마을을 찾았다. 마오리는 뉴질랜드 원주민으로서 '땅의 주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인구 중 14%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들은 민속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을 전해주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큰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괙괙 지르며 먼 타국에서 찾아 온 여행객들을 뜨겁게 환영한다. 얼굴과 몸에 온갖 분장을 하고 칼과 창을 들고 무사의 무서운 행동을 보여 주어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게 만든다. 순간순간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얼굴로 재롱을 떨며 자신들만의 전통을 춤으로 노래로 표현한다. 마지막 공연으로 연가를 부른다. 연가의 고향이 뉴질랜드 마오리족이라는 것을 부끄럽지만 오늘에서야 알았다.

옛날에 원수 집안의 두 마오리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매일 싸움만하면서 치고 박고 힘겨루기만하는 부족이었다. 두 집에는 처녀총각이 있었고 두 남녀는 눈이 맞고 말았다. 그들은 바다를 두고 밤새 카누를 저어 오가며 밀회를 즐기다가 들키고 말았다. 둘은 집안들 몰래 밤바다 사이를 오가다가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 사연을 들은 두 집안에서는 죽음을 불사하고 사랑에 빠진 그들을 인정하고 두 집안이 화해했다는 아름다운 사연이 숨어 있었다. 그들의 사랑을 위한 노래가 연가다. 밤마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거센 풍랑이 밀려와도 카누에 몸을 싣고 성난 파도를 밀어내고 그리움을 달랜 애틋한 사랑노래다. 우리나라의 노래인줄 만 알고 듣고 불렀던 연가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민요였던 것이다.

물의 온도가 100도 넘게 펄펄 끊는 온천지대에 사는 마오리족들의 열정이 있어 사랑도 정열적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을 만나 그들의 뜨거운 마음속에 핀 사랑을 느끼고 그들의 영혼으로 만든 전통음식 ‘항이’를 먹으며 철없던 시절 밤새 울면서 불렀던 연가를 되새김 해본다.

그대만을 기다리리/영원히 기다리리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던 그 사람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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