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노천의 우리역사 산책13

   
▲ 시인 정노천

고구리(高句麗)에서는 전전국가 국호를 취해서 건국하고 다물 정책을 목표로 했다. 다물(多勿)이란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구리에게 구토가 있을리 없으니 이는 전전국가를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전 국가는 ‘단군조선’ 즉 ‘고조선’이고 전전국가의 국호는 한웅이 세운 ‘구리(九黎)’였다.

이는 옛 땅을 찾는 것을 ‘다물’이라 했는데 국호도 그 음을 다물한 것이다. 백제는 고구리에서 갈라졌는데 전통계승을 위해 전전국가 구리(九黎)를 건국한 거발한(居發桓) 한웅의 발음을 따서 수도의 명칭으로 삼아 거발성(居拔城)과 한성(漢城)이라 명했다. 그리고 신라는 전전국가 백성의 호칭인 ‘묘민(苗民)’을 따서 ‘묘민의 후예(苗裔)’로 했다.

이를 보면 삼국은 모두 하나의 민족임이 드러난다, 모두들 국호와 수도명과 백성의 후예라는 영토, 수도, 백성을 전통으로 계승했다. 우리민족은 최초 시조를 뿌리로 해서 뻗어나간 가지를 하나로 보는 족보사관을 갖고 삼국의 후예가 하나 되는 역사를 정립해 왔다.

그것이  <삼국사(기)>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계승방법에서 삼국후예를 하나로 칭하는 것이 '구리'이니까 우리민족을 ‘구리 후예’ 또는 ‘구리족’ 또는 ‘구리인’으로 하는 것을 제안하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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