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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순 시인

이 땅에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민족의 비극을 안겨준 6.25전쟁, 상상만 해도 몸서리 쳐 진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장에 뛰어들어 초개같이 목숨을 바친 해맑은 청년들, 사랑하는 아들들이 꽃다운 나이에 가족과 정든 집을 떠나 낯선 산야에서 홀연히 이슬로 사라지고 피폐한 민생과 황폐해진 국토에는 수많은 사상자가 팔다리를 잃고 부모 빼앗긴 고아들로 수두룩했으며 일천여만 이산가족의 가슴앓이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귀하고 값진 희생에도 불구하고 승자는 없고 오로지 패자만이 남을 수밖에 없었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 안 되리라.

해마다 6월이 오면 웃지 못 할 그때 그 시절 개그 같은 내 출생의 비화가 떠올라 괜스레 서글퍼진다.

생포된 포로들이 사상과 이념으로 내편 네 편으로 대립해 수많은 양민이 학살되고 크고 작은 폭동이 난무하여 죽어 나간 사람만도 엄청났던 우리민족 아픈 역사의산물인 이름 하여 거제포로수용소에서의 일이다.

쪽빛 바다에 갈매기가 춤추고 높 낮은 산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 거제도에서 평화로이 살던 나의 부모님이 난리 통에 집을 징발당하여 쫓겨나갔다가 포로들이 석방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만삭이었던 어머니가 사방이 높고 두껍게 둘러쳐진 어둑한 담장의 수용소에다 거처를 정하고 해산을 하셨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죽음의피와 내 인생 서막의피가 같은 시멘트바닥에서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양립된 이념에서 자행된 폭행과 고문으로 서로 죽이고 죽여 피비린내 진동하는 수용소시멘트바닥에서 내 탯줄이 잘렸다니 생각만 해도 오싹하고 으스스한데 아이러니하게 태어날 때가 음력오월이라 양력으로 거의 유월이므로 6.25와 근접하여 생일 때만 되면 수용소 생각에 절로 쓴 웃음이 나온다.

서울에서 고향거제에 내려가면 마치 생가이기도 하듯 관람료를 내고 본능처럼 둘러보는 수용소, 지금도 내 호적에는 번지도 없이 ‘포로수용소에서 출생함, 이라고 분홍글씨처럼 전쟁유산으로 남아 있어 여느 관광객들과는 그 느낌이 다를 성싶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전설쯤의 일과성관광코스로 스쳐가지 말고 교훈적인 측면으로 성찰하며 국가관을 고취시키는 계기를 삼음으로써 이 땅에 전쟁역사를 다시 쓰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